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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얘기로, 한 발자욱 내딛을 때마다 전자기기로(휴대폰이든 PMP나 MP3 든) 눈길을 던지는 중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는게 불가능한 요즘, 지극히 구시대의 유물스러운 책 한권을 들고 있다는건 때론 스스로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여전히 시대를 역행해 오프라인적인 취향에 물든 내 자신이 일면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싫지않은 자존감마저 고양시키곤 한다. 길을 걷거나, 버스에 흔들리면서, 지하철의 외진공간에서들 내가 다른 사람의 일부를 곁눈질하며, 역시 일부겠지만 그 취향을 가늠해보듯, 다른 사람들도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 한권으로 나에 대한 무언가를 짐작해내려고들 하지 않을까... 라는 어찌보면 터무니없고 또 어찌보면 지극히 인지상정... 거추장스러운 마음가짐은 이제 제 마음대로 수를 늘려버리는 나이와는 하등 관련도 없다는 듯 여전하기만 하다.

Cujo
카테고리 문학>소설>미스터리/스릴러/호러
지은이 King, Stephen (NewAmer.Library,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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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티븐 킹 코너의 책 읽기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를 '모두'로 바꾸어내는 작업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아직 남아있는 책 몇 권은 그 표지의 불건전함(?) 때문에... 또는 너무나 낡아버려 먼지가 풀풀 일것만 같거나, 누구나 접해봤을 흔해빠져버린 듯 한 제목 탓에(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아무튼 별 말도 안되는 여러 이유를 꼽아 읽은 셈 치자 싶어 비켜가는 대상들에 포함되곤 했다.

어느 한적한 마을, 캐슬록(실제 지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킹이 참 좋아하는 마을인듯)으로 이주한 비트 트렌튼네 가족의 4살난 외아들 테드는, 한밤 중 찾아오곤 하는 벽장 속 호박 빛 눈동자 괴물의 존재에 잠자리를 설치곤 한다. 아빠 비트가 만들어준 괴물쫓는 문구로 간신히 두려움을 달래는 테드, 비트의 아내 도나마저 어떤 불길한 기운의 존재와 함께 깊숙한 외로움의 공포에 시달린다.
마을 외진 곳에서 자동차공업소를 운영하는 조 캠버는 언젠가부터 자동차수리비 대신 세인트버나드종의 개를 받아 길러오고 있었다. 200파운드에 달하는 거대한 개 ‘쿠조’는 <주인남자>, <여자>, <소년>과 함께 자유롭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토끼몰이에 나섰다 외딴 동굴 속 박쥐로부터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된다. 조의 부인 채리티는 아들 브레트와 함께 먼 도시 나들이에 나서는데, 브레트는 출발전 마주쳤던, 슬픔과 고통의 눈빛, 알수없는 울부짖음의 쿠조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도나는 테드와 함께 자동차 수리를 위해 조의 외딴 집을 방문하게 되고... 피 냄새에 사로잡힌 야수와 마주치게 되는데...
 

2003년. 누리.

'쿠조'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책 앞뒤 페이지에 자리잡고 있는 절대 '쿠조' 일리 없는 개 사진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인트버나드종을 실제 본적이야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우리세대의 명작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등장한 인명구조견이 그것임에 틀림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 착각했나 했다.
쿠조의 앞뒤에 인쇄된 '호박 빛' 털에, '붉은 빛' 눈동자의 개는, 아무리봐도 세퍼드 종이었으니까. 인상적인 쿠조의 거짓 사진은, 내가 가벼운 괴수소설애독자로 비춰질까 혹은 개 조련사로 보이진 않을려나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니... 뜬금없이 '개 나이'로 노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는 우리집 '누리' 생각도 나고...

'낯선 눈동자' 그리고 '쿠조'
여하튼... '쿠조(CUJO)'는 얼마전 읽은 쿤츠의 '낯선 눈동자(Watchers)'와 슬쩍 견주어 볼 수 밖에 없는 내용이리라. 완벽히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 한쪽은 유전자조작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아인슈타인'이란 골든리트리버의 행복할(?) 고난극복기 또는 가족형성기지만, 다른 한쪽은 평범한 지능의 '쿠조'란 세인트버나드의 처절한 파멸 그리고 가족의 붕괴기라는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권리를 누리지만, '쿠조'는 <소년>을 포함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만 하는 이끌림에 순응해야만 한다.

쿤츠와 킹의 글을 전개해나가는 능력은 단순히 스릴러 작가일뿐이다라는 식으로 폄하한다해도 대단하달 수 밖에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그저 치밀하게 맞물린 글의 전개방식만은 아닌, 두 작가 모두에게, 그게 비약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든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한 것이든 절절히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천재적인 화가로서의 능력을 보게 된다.

다만, 쿤츠는 '낯선 눈동자'류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저주받은 가문의 존재나, 시공간을 뛰어넘는 능력 등 낯설거나(반대로 참신하거나), 이젠 구태의연해(이젠 다른 작품들도 몇배 더 뛰어난 상상력을 담고 있기에) 공감할 수 힘든 거북스러움을 종종 갖게 한다. 사실 '낯선 눈동자'만 하더라도, 천재적인 지능의 '개'에 대한 일말의 개연성에라도 긍정하지 못한 상태에선 더 이상의 책읽기는 무의미했을테니까. 즉, 똑똑한 '개'의 존재가 모든 이야기의 전제이자, 전체가 되어버린다.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힘...

이에 반해 킹은 가끔의 상상력비약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벽장 속 미지의 존재(?)에 대한 실체규명은 중요치 않다. 불안한 잠자리에 시달리는 테드의 두려움, 낯선 곳으로의 이주와 버림당할 것 같은 외로움에 불륜을 서슴치 않으면서도 가정을 지키려는 도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비트의 당혹감... 심지어 <소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하면서도 광기에 빠져들어가는 쿠조의 마음까지... 그 모든 등장인물들의 속내가 책 한권이지, 절대 벽장 속 괴물이야기나 미처버린 괴력의 야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욕실에서 머리를 감다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냉기에 따끔거리는 눈을 억지로 떠봤거나, 침대 밑 어두운 빈공간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두 눈의 존재와 마주칠지 몰라 함부로 손을 넣질 못하거나, 한켠에 올려놓은 곰돌이 푸우 인형이 웃음기 가득한 눈길로 나를 응시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되거나, 잠결에 모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보고 있지나 않을 산발한 아낙네(?)가 떠올랐다거나, 사무실을 소등하고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진땀났다거나, 또 형광등이 순차적으로 꺼지는 그 찰나의 순간 고작 10여미터 거리의 승강기 안으로 몸을 던져넣기 위해 달음박질해본 일이 있다거나, 문득 창가에 서있지나 않을 무언가에 돌아보았다거나, 옆 자리에 앉아있는 와이프가 내가 당신 부인으로 보이냐... 라고나 하지 않을까, 사방의 그늘 속에서 무언가 깜작쇼를 하듯 나타나진 않을까... 등등의 사소하지만 곳곳에 베어있기에 잊을 수 없는 두려움에 잠깐이나마 시달려본 적이 있다면... 킹이 잡아내는 그 일상의 공포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듯...

이상... 챌... 끝...!